스위스 오기 전 내가 했던 상상속의 스위스
우리가 스위스라는 나라를 얘기할 때 흔히 떠오르는 그림이 있다. 저 멀리 뒤로는 눈이 꼭대기에 하얗게 보이는 산들이 있고, 앞에는 푸른 언덕 위에 아기 자기한 집들이 마을을 이루고 소들이 평화롭게 풀을 뜯는 모습이다. 혹은 마치 동화 속에 나올 것 같은 빨간 기차가 파란 하늘과 푸르른 초원을 가로질러 달리는 모습, 또 비현실적으로 깨끗하고 아름다운 거울 같은 호수에 비친 절벽과 산들, 또는 예쁜 들꽃들이 그것이다. 소설 알프스 소녀 하이디나 The Sound of Music (사실 오스트리아 알프스가 배경)에 비추어 진 그림같은 풍경들이 그것이다. 한 그림에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이 다 들어가 있다는 그것 말이다.
(라우터브룬넨, 베른 Lauterbrunnen, Bern 출처: Unsplash)
(멜흐호수, 케른스 Melchsee-Frutt, Kerns 출처: Unsplash)
(베르니나 익스프레스, Bernina Express 출처: Unsplash)
이 모든 스위스의 이미지들이 정말 사실이다. 물론 보정이 잘 된 전문가들의 사진들이겠지만 맑은 날 실제로 보면 그리 많이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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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 속에 있던 이미지가 현실, 아니 그 이상이 되다
이러한 이미지들이 관광산업을 위해 조작된 것이 아닌 정말 리얼한 현실세계라는 것을 스위스에 도착하고 그 다음날 알았다. 처음 취리히 공항에 도착했을 땐 밤이었는데 공항에서 루체른으로 가는 길이 정말 칠흑같이 어두워서 이 잘 산다는 나라가 왜 가로등도 제대로 안 밝혀놓았는지 의아해했다. 고속도로였는데도 말이다! 밤에도 어딜 가나 대낮같이 휘황찬란한 서울의 밤거리와 환한 고속도로의 가로등에 너무도 익숙했던 탓이었다. 특히 고속도로를 벗어나 시골길로 접어들자 우리를 태운 차의 운전사 아저씨가 이런 어둠 속을 뚫고 운전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나는 그 당시 루체른 호숫가에 있는 조그마한 마을에 위치한 호텔학교에서 공부를 할 계획으로 영국에서의 어학연수를 마치고 들어온 것이었는데, 한국에 비해 인프라가 제대로 되어있는 것 같지 않은 스위스의 첫 인상에 적지 않게 실망했었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 기숙사에서 첫날밤을 보낸 뒤 아침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들어간 순간, 나는 정말 내 눈을 의심했다. 거대한 통유리창 너머 코 앞으로 다가오는 호수의 전경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아니, 아름다움을 넘어서 경외로 왔다. 내가 지금껏 봤던 그 어떤 것 보다 나를 압도했다. 시간이 꽤 오래 지났지만 아직도 그 충격을 잊을 수 없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그러했는지도 모르겠다.
(나중에 살면서 알게되었지만 절약과 절제의 청교도 정신을 계승해 온 스위스가 그 당시에 저녁 5, 6시 이후에는 모든 관공서는 물론, 상가와 슈퍼마켓, 쇼핑센터등이 문을 닫고 거리에 인기척이 뜸한 나라였고, 따라서 거리의 가로등도 하나 건너뛰고 하나만 켜져 있어 많이 어두웠던 것이었다. 지금은 일요일과 공휴일 포함 매일 저녁 8, 9시까지 여는 슈퍼마켓도 많아지고 주유소 가게들은 더 늦게까지 여는 등 정말 많이 달라졌지만 말이다. 개인만이 아닌 공공의 전력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으려는 국민성은 2023년 올 겨울 전 세계적인 물가상승으로 인해 관공서와 각 가정의 실내온도를 1도씩 내리자는 스위스 정부의 장려와 많은 곳에서 이를 따르는 모습들을 보면 확연히 알 수 있다.)
(휘어활트슈태터 호수, 루체른 Vierwaldstättersee, Luzern 출처: Unsplash)
내 기억 속의 스위스 호수와의 첫 만남과 가장 가까운 사진을 골랐다. 내가 본 광경은 아침이라 더 밝은 색이었고 안개가 끼지 않은 맑은 하늘과 호수였다. 퍼온 사진이다.
(루체른의 호수 Vierwaldstàttersee는 보는 각도에 따라 약간씩 다르겠지만 이렇게 지그 재그로 생긴 모양의 이미지로 유명하며 스위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호수들 중 하나에 속한다. 출처: Unsplas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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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 맞춤 호수풍경, 호수는 내 기분을 안다
지금은 어딜가나 보이는 그런 전경들에 익숙해져서 더 이상 그때와 같은 강도의 충격은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여전히 스위스의 자연은 항상 나를 감탄하게 만든다. 매일 보는 취리히의 호수풍경도 날씨와 기온, 계절과 시간에 따라 하늘과 물의 빛깔, 산과 언덕들을 감싸는 공기층 등이 속속들이 달라지기에 볼 때마다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또 같은 곳의 산과 호수 풍경도 그때그때 나의 감정과 기분에 따라 달라 보인다. 정말 사진을 제대로 배워서 이 아름다운 호수들의 풍경을 멋지게 찍어 남기고 싶은 욕망이 불끈 거리기도 한다. 나에게는 카메라를 다루는 게 결코 쉽지는 않기에 (기계랑 별로 안 친함;) 이 멋진 광경들을 그냥 내 아이폰 11프로로 찍는 게 전부다. 다행히 폰 카메라가 성능이 아주 나쁘지는 않아 가끔 운이 좋으면 정말 끝내주는 사진이 찍힐 때도 있다. 앞으로 마음먹고 제대로 사진을 배워서 내 마음에 쏙 드는 직접 찍은 사진들로만 블로그를 장식하는 날이 오면 좋겠다.
(내가 찍은 마테호른산과 리펠 호수 Matterhorn mit Riffelsee. 내가 직접 아이폰으로 찍은 사진들 중에 가장 멋진 사진이다. 좋은 날씨가 물론 한 몫 했다. 이 호수에 거울처럼 비치는 마테호른의 풍경은 너무나 유명하며 스위스 관광의 must see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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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가치가 있는 스위스의 자연유산
이러한 아름다운 풍경과 깨끗한 자연은 스위스인들이 잘 지키고 가꾸며 자랑스러워 하는 이들의 천연 자연유산이며 매년 어마어마한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는 효자상품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자연뿐만 아니라 스위스의 26개 주( Kanton, 칸톤)와 각각의 대표 도시들도 또한 저마다 확연한 고유의 특색이 있다. 물론 역사적인 이유로 크게 독일어권, 프랑스어권 그리고 이탈리아어권으로 나누어져 있음에서 오는 문화적, 언어적 차이도 한몫한다. 기차로 스위스를 가로질러 다닐 때 보면 다른 언어권으로 들어갈 때는 그곳의 자연환경과 건축양식의 차이가 보이고, 공기마저 그 느낌이 달라진다. 이렇게 작은 스위스라는 세상 안에는 너무나 다양한 모습과 가치들이 모여있고 서로 같이 공존하며 이 스위스라는 나라를 더욱 매력적으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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