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의 로카르노 호수
어제 꽤나 힘들었던 그림 수업을 마치고 자려고 침대에 들었는데 매트리스의 안락함에도 불구하고 깊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많은 분들이 그러할 테지만 나도 집을 나오면 아무리 좋은 침구와 푹신하고 안락한 매트리스가 있어도 집에서 만큼 잘 자지 못한다. 또한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긴장감도 한몫했던 것 같다.
자넷이 나를 로카르노 기차역 앞까지 태워다 주었다. 짧은 허그와 수업 고마웠다는 인사를 마치고 그녀는 돌아갔다. 나를 취리히로 데려다 줄 기차시간까지 약 30분 정도가 남아있었다. 나는 역에서 멀지 않은 호수쪽으로 걸어갔다. 이른 아침이라 사람들이 보이지 않아서 조용했다. 아침 햇살이 꽤 눈을 부시게 했다. 야자수 잎새 사이사이로 햇빛이 갈라지는 모습이 이국적이었다. 알프스 이남인 티치노 지역은 알프스 이북 지역보다 기후가 마일드하고 여름에 해가 더 강렬하다. 그래서 야자수나 올레안더를 비롯한 아열대 식물들이 잘 자란다. 호수 쪽으로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근방에 배들이 나란히 정박되어 있고, 멀리는 안개에 감싸진 벽처럼 보이는 산들이 앞 뒤로 놓여있다.
호숫물 가까이 걸어내려갈 수 있게 놓인 계단이 있어 살금살금 내려가 본다. 오리 한쌍이 놀고 있어 도망가지 않게 소리를 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날씨가 풀리고 짝짓기 철이 되었는지, 여기저기 암컷과 수컷 오리들이 쌍을 이루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 공원이나 가로수 등의 초목을 보면 그곳의 기후적인 특색이 보인다. 배들이 정박되어 있다.)
( 아침 햇살이 정박장 수면 위로 부서진다.)
( 야자수 아래 호수물로 가까이 갈 수 있게 계단이 만들어져 있어 샌드위치나 커피를 들고 와서 앉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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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매기들의 간식시간
조용하던 호숫가가 갑자기 시끌벅적 해졌다. 갈매기들이 정신없이 여기저기 날며 끼룩끼룩 소리들을 내었다. 조용히 오리 커플을 관찰하다가 놀라 주의를 돌아보니 갈매기들 뿐만 아니라 오리들과 백조 한 마리도 어디선가 나타났다. 어떤 한 여성이 난간 위에서 빵 부스러기를 호숫물 위로 던지고 있었다. 평화롭고 한가하던 이곳이 갑자기 소란한 파티장이 된 듯했다. 갈매기들이 먹을 것에 흥분하여 공중회전을 하며 소리를 질러댔다.
나는 가끔 호숫가에서 피크닉을 할 때 땅으로 떨어진 부스러기들을 먹으러 가까이 다가오는 갈매기들이 좀 무서울 때가 있다. 얘들은 성격이 좀 포악한 면도 있어서 낮게 날며 기회를 엿보다 사람이 들고 있는 먹을 것을 낚아 채 가기도 한다고 들었다. 하지만 이건 몸집이 더 큰 바다 갈매기들 이야기인 것 같기도 하다.
( 갑자기 갈매기들이 떼로 몰려들어 시끄럽게 굴기 시작했다.)
( 어떤 분이 빵 부스러기를 새들에게 뿌리고 있다. 그런데 먹기 위해 이렇게 높이 나는 오리를 본 적이 있었던가?^^)
( 난간 위에서 내려다본 로카르노 호수의 물은 너무 맑고 투명해 모래와 돌들이 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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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취리히로 돌아가는 기차와 고타르트 터널(Gottardtunnel)
기차가 출발할 시간이 되어 다시 로카르노 역으로 돌아왔다. 내가 탈 기차 S20번이 멀리에 서 있다. 시간을 보니 막 출발할 시간이어서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자 문 앞에 서 있던 열차 승무원 분이 버튼을 눌러 주셔서 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물론 정시에 출발하기 위해 서 있던 기차였지만, 나는 꼭 나를 기다려 준 것 같아 고마웠다 :) 어제 올 때와 다르게 사람이 별로 없다.
뒤 이어 벨린조나에서 탄 취리히 행 기차도 자리가 텅텅 비었다. 아마 일요일 오전이라 그러하리라. 2등석 자리도 여유가 많아서 쾌적하게 목적지까지 올 수 있었다. 기차를 갈아타기 전 벨린조나 역 앞 알 포르토에서 산 커피와 크로와상을 먹으며 다시 블로그를 조금 다듬었다. 곧 창문 밖이 깜깜해지고 기차는 고타르트 터널 안으로 들어갔다. 고타르트 터널(Gottardtunnel)은 57km의 알프스 산을 뚫어 만든 세상에서 제일 긴 터널로 건설기간이 17년이나 걸렸다고 한다. 이 깜깜한 터널을 통과하려면 고속으로 달리는 기차도 20분 이상 걸린다. 스위스 와서 처음으로 이 터널을 지날 때 그 20분이 엄청 길게 느껴졌었는데... 기차가 지나는 터널도 있고 자동차들의 터널도 있는데, 휴가철에는 차량이 많아져 이 길이 막힐 때가 많다. 알프스 산을 굽이 굽이돌아 넘어갈 수도 있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대신 산의 높이에 따라 달라지는 자연경관을 즐길 수 있다.
( 스위스에 많이 있는 이층 기차. 왼쪽에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인다. 2등석도 이렇게 한가하면 조용하고 쾌적하다.)
( 알 포르토에서 빵을 조금 사서 집에 가져간다. 이탈리아 스타일의 속이 찬 크로와상과 커피. 한 입 베어무니 바닐라 크림이 달고 부드럽다. 휴... 칼로리는 어쩌고?)
고타르트 터널을 지나 바깥으로 나오면 아까 알프스 이남인 티치노 지역과 자연환경이 달라짐을 느낀다. 야자수도 없고 하늘도 덜 파랗게 보인다. 기차는 호숫가의 집들이 가깝게 보이는 아르트 골다우(Arth-Goldau)를 지나 Zug을 거쳐 취리히로 간다. 창문으로 지나치는 Zuggersee 모습이 무채색으로 모노톤이지만, 산과 호수의 경계가 모호해 미스테리하게 보이기도 한다.
( 20분 간의 고타르트 터널을 지나고 나오면 집들의 모습이 티치노와 조금 달라지고, 공기의 빛깔과 두께도 다르게 느껴진다.)
( 기차는 주그호수의 한 부분에 가까이 다가가다가 멀어져 취리히 방향으로 몸을 틀어 계속 달린다. 산과 호수의 경계가 안개로 가려져 신비스럽다.)
이렇게 로카르노에서의 짧은 주말이 끝나고 나는 이제 또 취리히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곧 또 가방을 챙겨서 떠날 것이다. 얼마 전부터 나는 가끔 주말을 이용해 기차로 짧게 여행하는 맛에 빠져있다. 날씨가 더 따뜻해져서 나무들이 녹색의 잎들을 매달고, 예쁜 꽃들로 가득한 호수의 풍경을 빨리 만끽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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