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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치노 주 Kanton Ticino (TI)/로카르노 호수 Lago Maggiore

취리히 - 로카르노 기차여행 하는날

by 레이크 하우스 2023. 3. 6.

 

이른 아침 취리히 중앙역의 모습

 

지금은 스위스 시간으로 오전 7시 30분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준비한 짐을 챙겨서 집을 나왔다. 취리히 중앙역은 중앙역답게 항상 여행객들로 붐빈다. 빠른 고속열차를 탈수있는 플랫폼 17개가 지상에 있고, 서울의 전철같이 모든 역에 정차하는 지역 주민들을 위한 S-노선들의 플랫폼이 지하층에 따로 있다. 지하층에서 올라와 고속열차를 타기 위해 지상층으로 올라왔다. 오늘은 아주 이른 아침도 아닌데 웬일인지 비교적 한산해 보인다.

빠른 걸음으로 일터로 향하는 직장인들, 학교로 가야 하는 무거운 가방을 멘 학생들, 인접한 이웃 국가로 장거리 출장을 위해 고속열차를 타려는 사람들은 다 노트북가방과 작은 캐리어 하나씩을 끌고 지나간다. 또 기차로 휴가를 떠나는 사람들, 공항으로 가려는 사람들, 공항에서 와서 다른 기차를 갈아타려고 두리번거리는 여행객들은 큰 여행가방들을 끌고 왔다 갔다 한다. 등산복 차림의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보인다. 기차 안에서 아침식사로 먹을 크로아상과 커피를 사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도 많다. 이 시간, 이 사람들은 각자 자신만의 이유로 이곳에 왔고, 나 또한 나만의 이유로 나를 실어다 줄 기차를 타기 위해 8번 플랫폼으로 들어선다. 

( Nikki de Sant Phalle의 작품이 천장에 달려있는 취리히 중앙역 광장이다. 오늘은 역이 좀 한산하다.)

( 멀리서도 보이는 기차의 출발시간을 확인할 수 있는 큰 전광판. 곳곳에 모니터로 된 전광판들도 설치되어 있다.)

( 단층짜리 유로시티(EC, Eurocity)기차. 새 기차라 반짝반짝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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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로카르노 가는 이유

 
로카르노로 가는 기차에 올랐다. 7시 33분 발 이탈리아 밀라노행 단층 고속열차이다. 나는 벨린조나 역에서 내려 로카르노로 연결되는  S20으로 갈아타야 한다. 스위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이 나도 2등석을 이용하고, 빠르고 안전한 기차 여행에 늘 만족한다. 스위스의 기차는 도착, 출발시간이 정확하기로 유명하고(물론 아닌 경우도 있다. 겨울에 눈이 많이 왔을때나 사람들의 유입이 큰 출,퇴근시간 등) 대부분 깨끗하고 관리가 잘 되어 있어서 이용하기 쾌적하다. 또한 이곳에선 버스보다 기차가 더 대중적이고 더 발달되어 있다. 한산했던 중앙역의 모습과 달리 기차 안이 꽤 붐볐다. 로카르노는 취리히 역에서 두시간 반 이상 타고 가야 도착하는 목적지이기에 나는 맥북과 스케치북을 챙겨 왔다. 나는 그림 그리는 작가이며 아이들과 어른들에게 그림을 가르친다. 로카르노에 사는  나에게서 그림을 배우는 친구의 수업이 있어서, 오늘 그 친구의 그림을 봐주고 드로잉을 가르치기 위해 가는 길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앉을만한 자리가 없다. 멀리서 부터 봐도 의자 위로 삐죽 나온 머리들로 보아하니 빈 자리가 없어보였다. 나는 테이블이 있는 좌석에 앉아 컴퓨터로 일도 하고 드로잉 연구도 좀 할 요량으로 자꾸 앞으로 이동하며 더 여유있는 자리를 찾았다. 그러나 테이블이 붙어있어 일할 수 있는 자리는커녕, 짐을 껴안지 않아도 되고 편하게 앉아서 갈 수 있는 자리조차 찾을 수 없었다. 스위스에서 흔히 보이는 이층 기차는 자리가 거의 항상 여유가 있는데, 꽤 신형인 이 EC(Eurocity) 기차는 복도 공간이 커진 반면 좌석 수 가 좀 많이 줄어든 느낌이었다. 지나가며 문이 열려있어서 우연히 들여다본 화장실이 새 기차답게 유난히 깨끗하다. 

 ( 문이 열려있기에 들여다본 기차 화장실. 스위스 기차 화장실은 대부분 깨끗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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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기차, 2등석에서 1등석으로 업그레이드 하다

 
기차칸들이 서로 연결된 통로를 몇 번 지나고 나니 1등석 칸이 나왔다. 기차표 검사 중이던 분에게 물어보니 이 뒤로는 더 이상 2등석 칸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2등석이 너무 꽉 차서 자리가 없다고 하니 그냥 1등석으로 업그레이드하라고 농담으로 나에게 권유한다. 어, 그건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흠... 자리를 둘러보니 확실히 조용하고 여유가 있다. 그래, 이 기회에 한 번 1등석 타 보지 뭐. 22.50 프랑을 내고 업그레이드를 받았다. 이렇게 해서 지금 나는 로카르노행 1등석 기차를 타고 가며 이 블로그를 쓰는 중이다 ;) 그런데 기차 1등석은 어떠냐고 묻는다면... 그냥 똑같다. 2등석보다 빈자리가 많다는 것 빼고는.

( 이렇게 우연히 1등석 기차를 처음으로 타 보게 되었다.  Reduziert 1/2은 거의 모든 표들을 반 값에 살 수 있게 미리 사놓은 Halbtax가 적용되었다는 건데, 스위스는 교통수단이 비싼 편이라 기차를 자주 이용하는 사람들은 할브탁스를 대부분 꼭구입한다. 1년, 2년 그리고 3년 짜리가 있다.)

( 이렇게 여유 있다니... 비싼 게 좋을 때도 있다(사실... 많다! ). 하지만 2등석이 이렇게 여유 있을 때도 많다. 오늘은 물론 아니었다. )

( 1등석에서 나름대로 일 하면서 즐기는 커피와 크로와상 맛이란 :))

( 노트북에서 언뜻 눈을 띄고 고개를 들어보니 스위스의 한 시골마을이 시원하게 눈에 들어온다. 날씨는 좀 흐린 편이다.)

( 이렇게 드로잉 수업도 준비하고, 블로그도 쓰고, 유튜브도 보면서 오다 보니 금방 목적지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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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카르노의 빵& 커피 맛집 카페 알 포르토 Al Porto

 

로카르노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9시 44분. 꽤 오랜 시간 기차로 달린 것 같은데 아직도 오전 10시가 안 되었다니... 역시 아침을 일찍 시작하니 하루가 길어지고, 무언가 많이 얻은 것 같고, 아직 많은 일을 한 것도 아닌데 왠지 뿌듯하다. 목이 말라 역 앞의 편의점을 찾았다. 그러느라 역의 사진 찍는 걸 깜빡... 여기 로카르노 맞다. 음료코너에 음료수를 뜻하는 이탈리아어 베반데 Bevande 가 적혀 있다.

로카르노에 오면 내가 꼭 들르는 맛집 알 포르토 (Al Porto)가 있다. '항구에서'라는 꽤 낭만적인 이름을 가진 이 베이커리 겸 카페는 칸톤 로카르노에 5군데 지점이 있고 빵들과 커피 다 훌륭하다. 또 샐러드와 샌드위치, 다양한 디저트 종류가 있다. 이곳으로 여행을 오실 계획이라면 꼭 방문하시길 권한다. 여기 역 앞에 있는 알 포르토는 테이크 아웃과 앉을 수 있는 카페가 함께 있고, 코너를 돌아 아래쪽 호숫가로 몇 걸음만 걸으면 간단한 식사도 할 수 있는 알 포르토 카페 겸 레스토랑이 있다. 내가 들어갈 땐 분명히 사람들이 적었는데 나 뒤로 갑자기 많이 들어와 분비기 시작한다. 아까 벨린조나에서 갈아탄 기차 S20도 꽤 붐볐었는데... 오늘은 내가 사람들을 많이 몰고 다니는 날인가 보다.

( 이 편의점은 음료코너가 특히 화려하다.)

 

 

( 알 포르토 카페 베이커리 입구. 다른 이야기인데, 유럽엔 아침에 단골 카페에 앉아 커피와 함께 신문을 읽는 사람들이 많다. 카페에서 읽으면 집중이 더 잘 되는가 보다. 아니면 집으로 신문을 배달시키지 않아서 일지도 모르겠다.) 

( 예쁜 쇼윈도. 보기만 해도 맛이 느껴진다. 유럽에서 오래 살았지만 생크림이 많이 들어간 케이크류는 여전히 처음 한 입 먹을 때가 젤 맛있다. 더 먹으면 좀 느끼하다. 난 식감이 있는 빵 종류를 더 좋아한다.)

( 빵집 구경도 참 재밌다. 같은 스위스이지만 이탈리아 파트인 티치노지역은 빵의 종류와 구성, 가공 정도가 이탈리아 본토와 완전히 같지도 않고, 독일어권인 취리히와 다른 점도 확실히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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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카르노 최고의 레이크 하우스

 

자넷과 알게 된 지는 벌써 4, 5년이 되었다. 다른 친구의 소개로 나에게 연락을 하여 그림을 배우고 싶다고 한 것이 만남의 시작이었다. 나보다 5살 연상인 자넷은 첫인상이 아담하고 밝은 성격의 매력적인 여자였다.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의 작업을 바탕으로 작품을 만들어 자신의 집에 걸고 싶다고 했다. 집을 새로 지었고, 그림들을 걸 수 있는 하얀 벽이 많다고, 그 벽들을 자신의 그림들로 채우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때 처음으로 가 본 로카르노 자넷의 집은 그야말로 감탄사가 저절로 나오는, 마치 건축 인테리어 잡지에 나올만한, 내가 가 본 집들 중 정말 최고로 크고 멋있는 모던한 집이었다. 로카르노 역에서 차로 10분 정도 달려 도착한 작은 언덕배기 마을에 자리 잡은 그녀의 집은 로카르노시와 호수가 시야를 가리는 그 어떤 것도 없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뷰가 특히 환상적이었다. 부동산업을 성공적으로 운영하는 그녀의 파트너가 확실히 안목과 능력이 있었다.

그녀는 나의 그림 스타일을 좋아하고 나의 가르치는 방식을 많이 존중해 주며, 정말 하나하나 열심히 배우는 완벽한 학생이다. 하지만 반면에 완벽주의의 성향을 가지고 있고, 자신이 하는 일에 기대치가 높아서, 취미로 하는 그림이지만 누구보다도 더 열심히 정열적으로 매진한다.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성취하기 위한 실행력이 아주 뛰어나며, 자신의 성과에 대해 자랑스러워한다. 자신의 욕심에 대해 솔직하고, 작은 것에도 정성을 다 하고 끊임없이 노력한다. 그런 자넷에게서 나는 정말 배울 점이 많은 것을 발견했고, 내가 가르치는 것 이상으로 나에게 영감을 주는 친구가 되었다. 만남과 작업이 계속됨에 따라 우리는 서로를 더 잘 알게 되었고, 거리 때문에 수업을 자주 하지는 못 하지만, 가끔 가는 그녀의 집이 나는 아주 편하고 즐겁다. 그녀의 집 벽에는 지금껏 같이 작업한 그림들이 이미 많이 걸려 있지만, 아직도 빈 벽들이 많이 남아있다 :) 멋진 그림들이 걸려있고 아름다운 가구들이 많은 자넷의 집을 언젠가 블로그에 소개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내가 가면 내어주는 손님방에서의 뷰. 호수 방향으로 난 쪽은 집 전체가 통유리로 되어있어 안과 밖의 경계를 최소화시킨 것이 이 집의 컨셉 중의 하나이다. 한낮의 호수 뷰이다. 밖에 달려있는 두꺼운 블라인드가 통창으로 들어오는 직사광선을 막고 시원한 그늘을 선사한다.)

(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호수와 하늘. 자세히 보면 하늘에 별들이 무수하다. 로카르노 시내의 불빛이 영롱하다.)

( 아침에 일어나서 호수를 보니 저 멀리 오른쪽 산 중턱에 일출로 인한 앞 산의 그림자가 선명하게 드리워져있다. 산 꼭대기에 쌓인 눈이 아주 조금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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